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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08일] 용서받은 자의 삶 운영자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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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8:21-35절 개역개정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러분 용서란 무엇입니까? 용서의 사전적 정의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 주는 것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용서는 흔적을 지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상황 자체를 흔적조차 없이 깨끗하게 지워내는 것이 용서입니다.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용서는 사랑입니다. 잘못한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잊어버리고, 그 사람을 사랑의 마음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영혼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용서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용서를 정의하고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정리하다 보니까 용서라는 것이 숫자로 정확하게 딱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책무를 수치화 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용서에 대해 랍비들은 이웃의 범죄를 3회까지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쳤다 합니다. 우리도 삼세 번 기회를 준다는 표현이 있죠. 그러한 배경을 가지고 베드로도 예수님께 일곱 번의 용서를 제안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내심 예수님의 칭찬을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차원은 무한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너그러움의 용서는 인간의 기준, 곧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용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이야기를 통해 용서함을 받은 자가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악함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용서받은 존재라는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내가 몇 번 용서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엄청난 돈입니다.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인데,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 이었습니다. 25절의 내용은 악덕 사채업자와 같이 어떻게 해서든 그 빚을 받아내려는 목적에서의 무자비함이 아니라, 주인이 이미 빚을 탕감해 줄 마음의 여력이 충분한 상태에서, 그 종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갚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엎드려 자비를 구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의 용서가 없이는 그 빚을 탕감 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주의 은혜와 자비가 없이는 스스로를 죄에서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고, 용서해 주십니다.

 

 

나는 관대함으로 용서받기를 원하는데, 남에게는 차갑고 정확한 모습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부채를 아무 조건 없이 탕감 받았다면, 누군가의 작은 빚은 얼마든지 용서하고 탕감해주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 베푼 자를 무시하고, 그 은혜를 짓밟는 배은망덕한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용서받은 자는 그 은혜를 기억하여 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용서받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용서는 단순히 빚을 탕감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는 너무나 중요한 척도입니다. 용서받은 자로서 마땅히 용서하는, 은혜 받은 자로서 그 은혜를 다시 베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흔적을 드러내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셀 모임 : 한 주간 가장 화나는 일은 무엇이며 왜? 인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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