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3월 11일] 말의 지혜를 가지라 | 송예진 | 2018-03-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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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25:23-31절 개역개정23.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 24.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25.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께서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26.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7. 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바른 말은 화를 면하게 해주지만 어리석은 말은 다른 사람을 더 분노하게 만듭니다.
1. 다윗에 대한 아비가일의 평가 아비가일은 음식을 급히 준비해서 다윗을 만나게 됩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땅에 대니라”(23절) 아비가일은 그의 얼굴까지 땅에 댑니다. 그것은 당시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나발이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라고 비웃었던 것처럼, 당시 다윗은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사울에게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매우 불안정한 처지였고, 다윗을 돕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권력자인 사울을 대적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팔십오 명의 제사장이 죽었고, 그 성의 남녀와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사울 왕을 적으로 만들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아비가일의 평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여인이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29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우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세상 사람들의 방법으로 싸움을 싸우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비록 자신의 불신과 교만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지만 그도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지 않겠다는 다윗의 굳은 의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분노에 찬 다윗에게 그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을 하는 아비가일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26절) 아비가일은 자신이 다윗을 찾아온 것은 다윗이 분노함으로 말미암아 나발에게 보복하려는 행위를 막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나발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29절) 이런 범죄 할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 막으시는 것도 하나님이 다윗을 지키시는 행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수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직접 심판하실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단지 자신의 위기를 넘기기 위한 임기응변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지혜로운 말로써 다윗의 분노를 그치게 합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은 나발 가정의 생명도 살리고, 다윗도 하나님 앞에 범죄 하지 않게 하여 왕이 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게 했습니다.
결론 우리가 하루를 살아갈 때에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합니까? 말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나는 하루 동안 살리는 말을 얼마나 하느냐’는 것입니다. 나의 말은 의미 없는 말들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로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말들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유익을 주는 말이 아닙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우리의 말은 분노가 사라지게 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노를 격동케 하는 말입니까?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지혜로운 말을 함으로 그의 가정과 다윗의 인생을 구해냈습니다. 지혜로운 말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한주간 우리의 말이 사람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셀모임 : 아비가일은 복음적인 삶으로 막힌 관계의 담을 허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의 분노를 가라앉혀 준 사람이 기억난다면 한번 말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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