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07일] 기도로 슬픔은 기쁨이 된다. | 송예진 | 2018-0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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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무엘상1:9-18절 개역개정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사무엘서의 배경이 되는 사사기의 시대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세대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은 이미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의 왕이 되어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세대입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일에는 하나님의 일을 섬기도록 선택받은 레위인들 조차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세대입니다.
이러한 세대를 성경은 마지막 때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 (딤후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러한 세대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나의 기도는 특별합니다. 한나가 드린 기도가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하며, 또한 그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1.한나의 기도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기도였습니다.
한나의 기도제목은 당시의 기준으로서는 하나님께 당당하게 가지고 나올 수 없는 기도였습니다. 당시에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저주와 징벌을 받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한나의 경우도 전혀 관계없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1장 5절의 말씀처럼 한나가 임신하지 못함은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도록 막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여자에게는 너무나 큰 수치였고 조롱거리였습니다. 한나에게는 브닌나를 통한 조롱만이 아니어도 주변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얼마든지 조롱받을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나는 애통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기도를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할 수 없습니다. 13절의 말씀에서 보듯이 한나는 속으로 말하여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일반적으로 감히 하나님께 가지고 나올 수 없는 제목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애통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시길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에서 한 과부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는 말에 외면하는 재판장을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갈 때에 재판장이 나를 번거롭게 하기에 그 원한을 풀어준다는 비유를 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누가복음 18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처럼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막으셨다고 생각되는 문제에 대해서 감히 하나님께 가지고 나온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계속해서 간구했습니다. 12절 말씀에도 나타납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삼상 1:12a)”
한나의 기도는 당시의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기도였습니다.
2.한나의 기도는 자신의 욕심을 뛰어넘는 기도였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통곡하며 기도했던 이유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겪는 조롱과 모욕에 가슴 아팠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세대의 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기도’인 것이 당연한 세대에서, 한나의 기도는 특별한 기도였습니다. 11절입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자신의 필요를 따라 아이를 요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한나의 상황 속에서 한나는 그 기도의 열매를 자신이 갖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소유한 채 살아가기 원하는 세대에, 한나는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하고 내어줄 수 없을 ‘자녀’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일시적인 감정에서 나오는 즉흥적인 서원이 아니었습니다. 한나가 이 서원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이를 통해 얻은 아들의 이름을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란 의미를 가진 ‘사무엘’이라고 짓기까지 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기도와 서원을 잠깐의 감정으로 치부하지 않고 이 서원을 지켰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동된 서원에 대해 성경은 시편 15편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5:4b)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 앞에 서원된 레위인조차도 자신의 소견대로 사는 세대에, 하나님께 자신이 받기 원하는 가장 소중한 것의 전부를 내놓겠노라고 기도하는 한나의 기도는 사사기의 시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앞에 특별한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3.한나의 기도는 믿음으로 응답받는 기도였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한나를 엘리제사장이 보게 하셨습니다. 한나의 기도의 제목은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무슨 기도를 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나에게는 응답이 되는 말을 전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1:17)”
한나는 지금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을 사용하셔서 한나가 기다리고 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응답 앞에 한나는 어떻게 행했을까요? 한나는 믿음으로 그 응답을 수납합니다. 그렇기에 한나는 오늘 본문 18절의 말씀처럼 반응합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삼상 1:18b)”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돌아보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에서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따라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평안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에 묶여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과거를 채우시고 완성시키실 것을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의 미래가 두렵습니까? 우리의 삶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며, 우리의 미래와 삶을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하시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세대에 한나의 기도는 특별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고정관념조차 내려놓고 긍휼을 구하는 기도였고, 자신의 욕심을 뛰어넘는 헌신의 기도였고,, 응답 앞에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는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가 한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특별한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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