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 송규철 목사 | 2025-03-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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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신명기2:16-25절 개역개정16.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 중에서 멸망한 후에 17.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20.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나니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주하였음이요 암몬 족속은 그들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으며 21.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22.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거주하였으며 23.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24.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단순한 건물인가요, 아니면 마음의 안식처인가요? 집과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은 인간 본성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내 집 마련’을 꼽으며, 작은 집이라도 얻게 되면 그것이 인생 최고의 성취처럼 느껴지고 깊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과 집착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를 넘어, 인간이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안식’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됩니다.
사람들이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내가 머물 수 있는 공간’, 즉 ‘안식처’를 갖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 때문입니다. 바쁜 삶 속에서 언제든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이 온전히 나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은 큰 위안을 줍니다.
땅을 소유하려는 욕망은 개인뿐 아니라 기업과 국가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기업들은 더 많은 땅을 확보하여 사업을 확장하려 하고, 국가는 국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도 불사합니다. 땅이 많아질수록 안정적인 기반이 마련되고, 존재의 확고함이 더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반대되는 시각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안식처를 세상에 두지 않으셨고, 세상의 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면 사람들은 땅과 집이 없을까 두려워하며 그것을 확보하려고 애씁니다. 이것이 곧 세상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며, 이 두려움이 우리를 끝없는 경쟁과 다툼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신명기 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땅을 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서의 자손의 지경을 지날 때 그들과 다투지 말라고 합니다.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 모압을 괴롭게 하지 말고 그들과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암몬 족속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미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광야의 여정을 통해 배워야 했던 것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영원히 거할 땅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참된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이며, 신자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며 그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땅에 내가 살 땅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의 더러움과 악함을 발견하면서 '나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땅에 들어갈 사람이다'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자기 자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은 우리가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가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손에 붙였다. 이제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신 2:24) 이는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땅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승리를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며, 우리의 노력만으로 성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고 다투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나그네로 부르셨고, 영원한 안식의 땅을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땅을 향한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 속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34절 "그 때에 우리가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그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진멸하였고" 하나님이 진멸해 버리시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존재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존재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통해서 시혼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나 시혼이나 같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는 특별한 사랑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이 시혼을 치면서 깨달아야 했던 것입니다. 시혼이 진멸당할 때 우리가 바로 진멸당해야 할 자들인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려 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참된 이스라엘의 본분입니다.
사람들은 땅과 집을 얻기 위해 인생을 걸고 살아가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잠시 머무는 곳일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땅과 집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땅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걸어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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